유럽 여행 2002

인생 첫 해외여행의 시작 된 2002년의 프랑스 파리 여행

타고르 2012. 3. 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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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다닐때만 해도 베낭여행은 수많은 대학생들과 청년들의 로망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다닐때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서 해외여행의 기회를 갖지 못했고 비행기라고는 친척 결혼식 참석을 위해 급하게 올라탄 부산행이나 제주도 수학여행까지 딱 두번 정도 밖에 없었다.
2002년 직접 창업한 회사를 말아 먹고 신용카드도 정지 될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프랑스 파리 파리행 비행기 표를 구입 했다. 이때부터 시작한 무계획적인 여행은 이후에도 여러번 반복 되었다.
30을 바라보는 29살에 대한민국 땅을 벗어나 처음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때 프랑스 파리에 친구가 없었다면 떠날 생각도 못했겠지만 여행도 사업도 용기가 있어야 저지를 수 있는 것이었다.

 2002년의 4월 말일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형제 같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사업 말아 먹고 다시 재기 하기 위한 에너지를 얻고자 창업부터 정리까지 함께 했던 후배 선호와 함께 떠났다.

아무 계획 없이 떠나던 때라 준비 한 것도 별로 없었다. 여행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우리는 가이드 책 2권과 비행기 티켓, 유레일 셀렉트 3개국 세이브 패스(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비연속 5일권, 약간의 현금이 전부 였다. 이때 느낀 여행 전의 설레임과 흥분은 지금도 있을 수 없다. 물론 낯선 외국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쫄지마~ 쫄지마~를 여러번 되네이면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때의 첫 여행은 2010년의 6개월 간의 장기 여행 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 했다.

2002년 여행에서는 JAL 항공을 이용 했는데 당시에 유럽에 가는 환승 항공사 중 가장 저렴한 것이 이유였다. 국내선 대한항공 외에는 이용한 적이 없었던 때라 우리보다 앞서 있는 일본의 JAL은 더 좋을 꺼라는 막연한 환상도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인천공항을 찾았고 긴장과 설레임 속에서 우리 비행기는 이륙 했다. 나의 여행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후 늦게 인천을 출발해서 저녁이 다되어서 환승공항인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 했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어쩔수 없는 1박을 해야 했는데 당시에 JAL이 좋았던 건 환승 승객에게 간사이 공항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에 무료 숙식을 제공 했다. 해외 여행은 처음이었던 두명의 서울 촌놈에게 일본 역시도 낯설고 모든게 신기하던 때였다. 긴장을 하면서 일본 입국 심사대에 섰는데 아무런 질문 없이 통과 했다.

간사히 공항에 바로 붙어 있는 호텔을 찾아가서 다음날 아침 부페 쿠폰과 방 키를 받아 들고 먼저 짐을 풀러 방에 왔다. 그때 우리가 좀 더 용기가 있었다면 저렇게 방에서 바다만 바라 보고 있지 않고 오사카 시내를 둘러 봤을텐데 공항 청사를 벗어 나지도 않았고 저녁도 자판기에서 파는 볶음밥과 핫도그 같은 것으로 연명 했다. 당시에 간사이 공항 환승 고객은 72시간의 체류가 가능 했었다.

호텔에서 바라본 간사이 공항 앞 앞바다.

 촌놈들에게는 호텔 투숙도 거의 처음이었다. 당시에 흔하지 않았던 디카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는데 무려 130만 화소에 2메가의 CF 메모리가 있었다. 사진도 30장 정도 밖에 못찍는데 외국 호텔에서 자게 되었다고 쓸데 없는 메모리 낭비를 하고 있었다. 부족한 메모리 덕분에 많은 사진을 찍지도 못했고 숙소에서 항상 백업 하기에 바뻤다.

 

 당연한 거겠지만 간사이 에어텔의 미니바에서는 일본 맥주와 음료로 가득 찼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일본 맥주를 접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미니바가 비싸다는 생각에 쉽게 마실 생각을 못했다. 

촌놈들의 첫 여행은 모든게 신기 해서 다음날 아침에 파리행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정로환의 일본 광고판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2메가 밖에 없는데... ㅠㅠ

 당시에 여행자에게는 맥가이버 칼이 필수라는 생각에 챙겼는데 공항 검색대에서 칼을 압수 당했다. 그때는 초창기여서 검색대에서 따로 봉투에 넣어서 보내주기도 했는데 이걸 환승 할때 찾았어야 했다. 파리에 출발 하는 날 아침에 이걸 찾겠다고 안되는 영어로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했는데 결국 실패 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친절한 간사히 공항 직원이 쿠쿠 전기밥통을 사갖고 가는 우리를 한국인으로 알아보고 먼저 티켓팅 하도록 편의를 봐줬고 이 직원들 통해 내 칼은 파리까지 부쳐 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간사히 공항에서 14시간의 지루한 비행을 했다. 당시에는 한국 영화도 몇편 없었고 그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싶다. 비행의 유일한 낙은 기내식과 간식을 줄 때 뿐이었는데 그때 간식으로 먹은 메실짱아치 오니기리는 잊을 수가 없다. 입에 맞지 않아서.... ㅡ,.ㅡ;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심사때 또 한번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고 스템프를 찍어 준다. 출국장으로 빠져 나왔을때 우리를 마중 나온 친구를 발견~ 영화나 드라마 처럼 출국장에 누군가 마중 나온다는 것은 큰 감동 중 하나다.

인천출국장에서부터 맡기 맥가이버칼(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찾기 위해 수소문 했는데 프랑스 공항 청사 직원들의 한결 같은 반응은 "응? 그거 찾을 수 있을까?", "운이 좋으면 찾겠지만 아마 찾기 힘들지모 몰라" 이런 반응이었지만 결국은 찾을 수 있었다.

 14시간의 비행 뒤에 도착했지만 시차 때문에 당일 오전 9시에 출발해서 당일 오후에 도착했다. 시간도 많이 남아서 친구 아파트에 짐을 풀고 샹제리제 개선문을 보러 나섰다. 2002년에 처음 본 개선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

 

상제리제 개선문에서 바라본 라데팡스 신개선문이 보인다. 10년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찾았을때도 이곳은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그때는 처음이어서 개선문의 구석구석을 살펴 보고 있었다.

 

 2002년 개선문 아래서 유럽 와서 처음 찍은 사진. 아 벌써 10년전인데 지금은 나도 많이 늙었다. 여행 떠나기 전에 구리색으로 염식도 했는데 비행기에서도 파리에서도 일본인으로 오해를 받았다.
나는 맨날 일본인 아니면 중국인으로 오해 받는데 한국인으로는 안보이는 것이냐? ㅠㅠ

개선문을 보고 상제리제 거리를 내려 가는 길에 푸조 쇼룸을 구경 했다. 당시에는 푸조의 역사를 보여 주는 올드카가 많았는데 2010년 방문 했을때는 Eco와 green을 주제로 많이 바뀌어 있었다.
*참고 링크: http://khan1000.tistory.com/61

파리에서 친구가 사는 아파트인데 벌써 10년이 넘게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돈이 없는 친구는 아니지만 워낙에 검소한 것도 있지만 계속 한 곳에 살 수 있는 것만 봐도 프랑스의 주택 정책이 얼마나 안정적인 걸 알 수 있다. 2010년에는 레이져 미백으로 이 당시 보다 훨씬 깨끗한 색을 유지 하고 있었다.
여행 때마다 이곳에서 지낸 시간이 2달이 넘는데 친구 말처럼 너무 내 집 같이 편하게 지냈나? ㅡ,.ㅡ;

프랑스에 도착한 첫날의 저녁은 바게트빵과 하몽이었다. 하몽은 돼지고기 넙적다리는 반숙성한 햄인데 2002년에 이미 난 하몽을 제대로 먹어 봤다. 바게트 빵과 함께 먹은 하몽은 맛있었는데 오히려 탄산수가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형제 같은 친구 성남.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은 늙지 않는 구나 2002년 사진이나 2010년 사진이나 똑같은거 같다.

 파리에서 지내는 한달동안 주말에 찾아갔던 빙센 공원. 굉장히 넓은 공원으로 친구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서 주말에 걸어서 다녀 왔다. 버스로 4정거장, 지하철로 2정거장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큰 숲과 호수를 가지고 있어서 파리지엥들에게 휴식이 되는 장소 였다.

빙센 공원에 있는 캄보디아 불교 사원 있었는데 과거 식민지 영향으로 수많은 보트 피플들이 프랑스로 망명을 왔다고 한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캄보디아 불교 사원에서는 종교 행사가 진행 되고 있었다.

캄보디아 불교 사원 때문인지 빙센 숲에는 코끼리 상도 있었다. 

 주말의 종교 행사 덕분에 캄보디아, 베트남 인들의 노점이 열렸다. 나중에 이 찰밥은 2010년 라오스에서 먹을 수 있었다. ㅋㅋㅋ

 이날 파파야 샐러드를 처음 먹었다. 친구 말처럼 물김치 대용으로 먹을 수 있을 만큼 시원하고 좋았다.

 우리가 있던 시즌에 지역을 도는 월드 카니발이 빙센 공원에 있었다. 처음 보는 놀이기구도 많았지만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 했다. 이때 처음 본 리버스 번지는 싱가폴 클라킥에서 유명한 놀이기구가 되어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를 도는 것도 좋지만 나는 이런 현지인들의 일상 속에서 생활하는게 그때도 지금도 좋았다. 

 친구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국적인 파리의 주택가 풍경

 2002년 당시도 지금도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파리의 굴절 버스. 저 버스를 타고 13구의 차이나 타운도 가고 많이 탔다. 정액제 개념의 교통 패스를 시민의 양심의 판단에 맡기는 파리에서는 굴절 버스가 많은 서민들의 무임 승차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친구 집 근처의 자전거 가게에서는 당시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형태의 자전거가 많이 있었다.
사진의 저런 자전거는 지금도 한국에서는 흔한 자전거는 아닌거 같다.

 2002년에는 세느강에서 유람선을 타기도 했다. 파리에서 살아서 유람선 타는 것에 흥미가 없는 친구는 집에 남겨두고 후배와 함께 둘이 타기도 했다. 하긴 우리도 서울 살면서 지방 사람이 유람선 타러 가자고 하면 흥미가 없는 것과 같다.
파리에서 처음 탄 유람선은 퐁네프 다리 밑에 있는 선착장에서 탔던 것으로 기억 한다.

 한강에 비해 작은 강폭의 세느강을 따라 유람선이 운행 하는데 당시 가이드는 불어와 영어로 진행 되었다.

 오르세 미술관을 지난다.

 알렉상드로 3세 다리와 에펠탑이 보인다.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 다시 봐도 좋을 것 같은 파리의 풍경

 우리가 탄 유람선은 에펠탑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배를 돌려 시테섬으로 향했다.
.

 노트르담 성당을 지나 시테섬 앞에서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 였다.

 유람선을 타고 나서 시청 앞의 백화점에 잠깐 들려 완구 코너에서 본 스머프. 100마리 모두 너무 갖고 싶었다. ㅠㅠ

 파리에서 지낼때의 어느날 저녁 친구 집에서 먹은 알자스 지방의 음식이었다. 검은 소세지 같은 것은 프랑스 식 순대인 부당(Boudin)인데 2002년 친구집에서 처음 먹었고 2010년에는 래현이네 집에 갔을 때 다시 먹어 볼 수 있었다. 당시 50센트면 살 수 있었던 바게트 빵은 동네 어느 빵집에 가도 맛있는 빵을 구할 수 있었다.

 나름 우리끼리 박물관을 찾아 떠난 날 처음 간 곳은 로댕 미술관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미술에 대한 관심은 적어서 그저 로댕 작품을 직접 보는 것에 만족 하는 수준이었다.
로뎅 미술관 야외 전시장에 있었던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도 로댕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었는데 처음 보지만 참 인상 깊었다. 애니를 좋아해서 강철의 연금술사의 진실문을 보니 지옥의 문을 많이 참고 해서 그린 것 같았다.

역시나 깔레의 시민들도 야외 전시장에 있었는데 슬쩍 뒤에서 서서 기념 촬영을 했다.

2메가 밖에 안되는 메모리의 한계로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고 눈으로만 담을 수 있었다. 그때도 가이드 책에는 하루동안 다 보기 힘들다고 한 오르세 미술관이었지만 우리는 2시간 만에 대충 보고 나올 수 있었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마네, 모네, 드가의 작품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특히 이삭 줍기는 발견 하고는 촌스럽게 "교과서에서 본 거다" 하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2층 전시관에 있는 해를 쏘는 헤라클레스도 기억에 남았는데 2010년 예술의 전당 오르세 전시회 때도 해를 쏘는 헤라클레스도 들어 왔다고 들었다.

파리에 있던 어느날의 저녁으로 스테이클 먹었는데 육질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스테이크 였다. 스테이크도 좋았고 한국인들이 선호 한다는 프랑스 맥주인 1664 맥주도 처음 마셔 봤는데 좋았다.

내 여행의 시작이 되었던 2002년 프랑스 파리 여행 이후에 큰 용기를 얻고 재기를 할 수 있었고 해외 여행에 쫄지도 않게 되었다. 이후로 유럽 외에도 일본, 홍콩 등 많은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뭐든 처음 하는게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두번째 부터는 쉬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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