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2002

바로셀로나 여행 중 처음 본 플라밍고 공연

타고르 2012. 3.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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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돌아와서 또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스페인 바로셀로나로 가기로 하고 파리의 리옹역으로 갔다.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비싼 돈을 주고 이번에는 Hotel Train Talgo를 예약 했는데 방이 없어서 4인실을 예약을 했다.
오후에 리옹역에 도착해서 기차를 타고 가는데 우리방에 아랍계 사람들 4명이 있었고 우리가 들어오자 다른 2명은 다른 방으로 이동 했다. 아랍 사람들도 영어를 하는 거 같지는 않고 어색한 적막만이 흘렀다.
아랍계 사람이 자신이 담배를 피고 싶었는지 객실안이 금연 구간임에도 후배 녀석에게 권했고 이 눈치 없는 녀석은 또 어색하게 그걸 받아서 피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들 가방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계속 가방을 건드리지 말라고 부탁 한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자기전까지 계속 되었다.
밤 10시쯤 되어 잘 시간이 되어 시트를 접고 침대를 만들어 준다. 자다 보니 스페인 국경에 도착 한거 같은데 방에 있는 사람들이 내렸는지 방을 옮겼는지 가방을 가지고 사라졌다.

아침에 바로셀로나 Fransa역에 도착 했는데 이번에도 민박집 예약을 하지 않고 도착하자 마자 공중전화로 방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때 시간이 8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는데 기차역에서 가장 가까운 아리랑 민박집에 방이 있다고 해서 찾아 갔다. 아리랑 민박집에 도착하니 아침인데도 이 집 사람들은 아직 한밤중이다.
3유로에 신라면과 공기밥, 햄 볶음과 계란 후라이가 나오는 아침을 먹었는데 당시에 이집은 매일 매일 같은 메뉴였다. 같은 메뉴임에도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싸서 지내는 동안 계속 먹었다.

아침을 먹으며 여행 중인 신혼부부와 함께 바로셀로나 동행을 했는데 제일 먼저 에스파냐 광장과 몬주익 올림픽 공원을 찾아 갔다. 

 이곳의 풍경은 2002년과 2010년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스파냐 광장 앞 로터리에 있는 경기장은 2002년에는 천정이 없었는데 2010년에는 돔 경기장으로 개보수 중이었다.

 이상하게 스페인은 사진이 많이 없다. 거의 필카로 찍은 데다가 디카는 메모리의 한계 때문에 많이 못찍은거 같다. 2010년에 다시 바로셀로나에 가서 사진은 충분히 담아서 다행이다.

 이 당시에도 분수쇼를 하고 있었는지 몰랐지만 아무 언급이 없던 걸로 보면 2002년에는 분수쇼를 하지 않은 것 같다.

 아리랑 민박집 할아버지가 그렇게 자랑하던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기념 부조는 제대로 찾지도 못하고 몬주익 성을 찾아 가다가 길을 잃고 공동묘지에 들어가기도 했다.

 몬주익 올림픽 공원을 지나 몬주익성에 갔는데 사진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당시의 몬주익 성은 입장료 보다 케이블카의 비용이 더 비쌌던 거로 기억한다. 요새 개념으로 만들어진 몬주익성은 바로셀로나 시내를 전망하기에 좋았다.

 몬주익 성에서 내려와 람블라스 거리를 지나고 바로셀로나 항구에서 휴식도 취하면서 여유 있게 보냈다.
당시에는 가우디에 대한 정보도 없어서 뭘 봐야 할지도 몰랐다. 람블라스 거리를 계속 걷다가 보케리아 시장에서 과일도 사서 먹었는데 2유로에도 꽤 많은 과일을 사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점심은 빵집에서 바게트빵을 하나 사서 챙겨온 잼이나 먹고 있었는데 야간 기차 비용으로 큰 돈을 쓰고 먹는건 부실하게 먹고 있다. ㅡ,.ㅡ;
점심을 먹고는 람부라스 거리의 구엘 저택으로 이동을 했다. 당시의 구엘저택은 무료 입장이 가능 한 곳으로 무료 가이드 투어까지 진행하고 있었는데 영어와 스페인어, 지방어인 카탈루냐어로 투어가 진행 되었다. 추억속으로만 남아 있지 사진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저녁에 민박집 할아버지가 극장 식당에서 하는 플라밍고 공연을 보자고 아침부터 우리를 꼬셨다.
자신에게 예약하면 와인 베이스의 상글리라 술과 빵이 무제한으로 제공되고 플라밍고를 1인당 5유로에 볼 수 있다고 해서 민박집에 투숙 하고 있던 10명의 한국인 여행객 10명이 저녁에 가게 됐다.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입구에 들어설때 낯익은 음악소리가 들린다. 바로 아리랑 이었다.
처음에는 과일과 빵, 샹글리라가 계속해서 나왔는데 한참 많이 먹는 우리를 과소평가 했는지 몇번이고 반복해서 리필을 요구 했고 언제부터인가 더이상 제공 되지 않았다.  우리가 할아버지를 불러도 외면 하시고.... ㅋㅋㅋ

작은 극장 식당이지만 우리 테이블 옆이 무대 바로 앞이어서 플라밍고를 즐기기에는 충분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플라밍고는 TV를 통해서만 봤지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꽤 유명한 공연팀이었는지 지역 방송국에서 공연을 취재도 나왔는데 가족이 대부분 무용단을 이끌고 있었는데 딸이라고 하는 젊은 여자는 캐서린 제타 존슨을 닮았던 것으로 기억 한다.
공연을 끝나고 우리 테이블의 사람들을 한명씩 무대로 이끌며 플라밍고를 같이 쳤는데 나는 제일 나이 많은 아줌마 무희 손에 이끌려 무대위로 올라갔다.

지지로 복도 없지 후배녀석도... ㅠㅠ 

 "지중해의 밤은 길다! 청춘을 즐겨라"라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밤 12시를 넘겨서야 나오게 되었고 버스나 지하철도 끊겨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때가 외국에서 처음 택시를 타봤는데 아마도 벤츠 E클래스 였던 것으로 기억 된다.

다음날도 아침을 먹고 신혼부부와 함께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러 갔는데 누구나 이 거대한 성당을 보면 "와~" 소리가 나올 것이다. 2002년 당시에는 앞면만 완성되었고 뒷면은 한참 짓고 있었는데 입장료를 끊고 들어가도 공사하는 것만 볼 수 있거나 지하의 박물관에서 소장 자료를 보는게 전부였다. 이렇게 우리가 공사비를 보태준 덕분에 2010년에 다시 와보니 공사가 상당히 진척 되었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뒤로 하고 해변까지 꽤 먼 거리를 걸었는데 알고 보니 누드 비치 였다. 멀리서 봐도 젊은 여자들은 없었고 할머니들만 과감하게 벗고 선탠을 즐기고 계셨던 기억이 있다.
해변에서 다시 시내로 돌아와 구엘공원으로 가는 신혼부부와 헤어지고 우리는 다음날 떠날 기차표를 예약하러 프란싸역으로 가고 있는데 그들과 헤어지자 마자 소매치기가 우리한테 붙었다. 환승하는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한명이 나를 앞질러 가더니 담배 한갑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걸 손으로 안줍고 발로 툭툭 차면서 어느새 위로 올라왔는데 이놈이 안밀리고 힘을 쓰면서 버틴다. 그 사이 내 지갑이 든 주머니로 손이 오는 걸 느꼈고 "씨X. 개XX야"라고 소리지르면서 있는 힘껏 놈을 밀쳤다. 놈은 바닥에서 몇번을 굴렀고 우리는 일단 뛰어서 거리를 벌렸는데 더이상 쫓아오거나 해꼬지는 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프란싸역에 와서 파리가는 열차를 예약하려고 했더니 직행으로 가는 기차가 없다고 한다. 난감해 하는 우리에게 친절한 역무원은 3번을 갈아 타서 파리에 도착하는 솔루션을 제공을 했고 덕분에는 우리는 하루 종일 걸려 바로셀로나에서 출발해서 10시간만에 파리에 돌아 올 수 있었다.

파리에 돌아와서 다시 보름정도 있다가 한국에 돌아 왔는데 이때의 첫 해외여행에서 큰 용기를 얻고 여건이 될때마다 여행을 하게 되었고 이때의 여행은 10년이 지났지만 첫 여행이어서 아직 생생하게 기억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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